
“신발 벗고 걸으러 나가볼까?”
맨발로 걸으며 지구와 접촉하는 ‘어싱(earthing)족’이 늘고 있다.
맨발걷기는 과거에는 건강관리에 관심이 큰 중장년층 사이에서 주목받았지만 이제는 젊은 세대도 과감하게 신발을 벗는다.
굳이 맨발로 걷는 이유는 뭘까. 일단 건강해질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맨발로 걸을 때 발바닥은 울퉁불퉁한 지면으로부터 다양한 자극을 받아 혈액 순환을 증진하고 심장 건강을 돕는다고 알려졌다. 수면의 질을 향상시키고 만성 통증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발바닥의 지압점들이 자극받아 다양한 부위 감각이 깨어나고, 발바닥의 미세근육들이 발달해 건강한 발을 만든다.
여기서 한층 진화한 개념이 어싱이다. 흔히 맨발걷기와 어싱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조금 다른 개념이다. 어싱은 인체가 지구와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것을 통해 지구의 자연적인, 결합되지 않은 전기 에너지(자유전자)를 받아들이는 데 목적을 둔다. 이를 돕는 활동 중 하나가 맨발걷기다.
어싱의 관점에서 자유전자들은 인체가 지구와 직접 접촉할 때 신체로 유입된다. 과학적으로 봤을 때에는 자유전자가 항산화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세포 손상을 일으키는 불안정한 분자인 신체 내 자유 라디칼과 반응, 이를 중화한다. 쉽게 말해 노화를 유발하는 활성산소를 중화한다는 의미다. 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어싱을 실천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맨발걷기뿐 아니라 해변이나 호수에서 수영하거나 접지 장비를 사용하는 방법도 포함된다.
사실 어싱 맨발걷기은 국내만의 일이 아니다. 어싱을 처음 소개한 사람은 미국의 사업가이자 작가인 클린트 오버다. 그는 2011년 저서 ‘어싱’을 통해 맨발걷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저자는 케이블 TV 사업을 하다가 간농양으로 고통받던 중 전기 공사에서의 접지 개념을 인체에 적용, 건강을 회복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싱 이론’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이후 어싱은 미국 웰니스족 사이에서 성행하는 중이다.
할리우드 웰니스 전도사 배우 기네스 펠트로도 자신의 건강매체 ‘굽(GOOP)’을 통해 어싱이 건강에 유리하다고 설파한 바 있다. 당시 펠트로는 맨발로 해변가, 흙길 등을 걸으면 불면증·관절염·우울증 같은 문제가 개선되는 데 유리하다고 소개했다.
국내서 어싱이 주목받은 것은 코로나19 사태 이후부터다. 약 15년 전 제주 ‘올레길 순례’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걷기 자체가 레저활동으로 부상했다. 여기서 나아가 양말과 신발을 벗고 걷는 것까지 이어진 셈이다.
스트레스에 자주 노출되고,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시달리거나, 제대로 잠들지 못해 힘들어하는 젊은층도 신발을 벗기 시작했다. 맨발로 걷고 ‘상쾌한 기분이 뭔지 알겠다’라거나, ‘맨발로 걷고 온 날 오랜만에 꿀잠 잤다’는 후기도 많다.

맨발걷기가 전국적인 열풍으로 부상하면서 지자체들도 ‘맨발로 걷기 좋은 길’ 조성에 나섰다. 지난해 3월 전북 전주시에서 처음 ‘맨발걷기 활성화 지원 조례’가 제정된 이후 전국 140여 개 지자체가 관련 조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옆 나라 일본에서도 이런 현상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어싱이 전국적으로 유행한 배경에는 ‘특별히 돈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한 몫했을 것이다. 신발조차 벗고 걸으니 멋진 장비를 사야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무료로 흙의 촉감을 느끼고, 발바닥을 시원하게 지압하고, 숲의 청량한 공기를 마신다.
필요한 것은 ‘열심히 잘 걷겠다는 의지’ 뿐. 퇴행성 관절염 등으로 다리가 아픈 사람도 평지의 부드러운 흙길을 천천히 걸으며 하체의 감각을 다시 깨워나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경제적으로 평등한 웰니스 활동이다.
어싱이 처음인 초심자는 짧은 구간부터 시작해 점차 걷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나가자. 부상 예방을 위해 평지에서 시작하고, 필요하다면 등산 스틱을 사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조찬호 청담셀의원 원장(가정의학과 전문의)은 “맨발로 걷기 전 파상풍 예방 접종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아무리 잘 관리된 길이라도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정희원 기자 happy1@sportsworld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