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글·사진 전경우 기자] 대구에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 있다. 달성군에 있는 도동서원은 지난 2019년 전국 648개 서원 중 9개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오를 당시 빼어난 건축미와 역사적 가치로 당당하게 등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도동서원은 풍기의 소수서원, 안동 병산서원과 도산서원, 경주 옥산서원과 함께 '서원 여행 빅5'로 손꼽혀도 실제 가본 이가 드물다. 풍기와 안동은 지척에 있어 답사 코스를 짜기 편하고, 경주는 이름난 관광지라 가볼 기회가 많지만, 대구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비슬산 넘어 달성군 도동서원은 꼭 저기 가야겠다는 마음을 먹어야 가보게 되는 곳이다.
대구의 서원은 경북의 동부 지역인 상주, 안동 등에 남아 있는 서원과 비교하면 건축적으로 호방한 맛이 있다. 건축물 자체의 규모가 큰 편이고 주변 풍광을 끌어들이는 ‘차경’의 스케일도 남다르다. 크고 웅장하고 화려한 것을 좋아하는 대구 사람의 취향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온갖 풍파를 겪으며 이리 저리 옮겨녀야 했던 복잡한 역사도 대구 서원의 특징이다.
서원 탐방 여행은 난이도로 따지면 '상'에 해당한다. 궁궐이나 큰 절집 처럼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며, 관리 상태가 부실한 곳도 많다. 내부 구조도 거의 비슷비슷하다. 하지만, 조선시대를 끌고 가던 성리학적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은 이에게 서원 탐방은 빼놓을 수 없는 여정이다.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낙동강을 굽어보는 달성군 구지면 대니산 자락에 있다. 이 곳은 한훤당 김굉필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에서 살아남은 전국 47개 주요 서원 중 하나다.
본래 서원은 선조 원년(1568)에 지방 유림들에 의해 현재 서원이 있는 곳에서 약 9km 정도 떨어진 비슬산 동북기슭에 쌍계서원으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된 후 선조 37년(1604) 현 장소인 대니산 기슭에 사우를 중건했다. 이후 광해군 2년(1610)에 도동서원이라 사액(왕이 현판을 내림)되었다. 도동서원(道東)은 ‘성리학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는 뜻이다.
도동서원은 정문 역할을 하는 수월루의 화려한 모습과 환주문을 지나 중심 공간으로 연결되는 좁은 돌계단의 극적인 대비가 톡특한 건축미를 보여준다. 원래 이 서원의 정문은 갓쓴 사람이 머리가 닿을 정도로 좁고 낮은 환주문이었는데 철종때 중건할 당시 후학들의 주장으로 수월루가 들어서며 모습이 크게 바뀌게 됐다. (유홍준_나의문화유산 답사기 6권 참조)
사원 내 강당과 사당 그리고 이에 딸린 담장이 유형적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고 전면의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은 사적 제488호로 지정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도동서원은 디테일이 깨알 같은 곳이다. 환주문의 꽃봉우리 모습의 돌, 중정당 기단부의 장식물, 둥글게 휘어지는 돌담의 형태와 장식물 등이 다른 서원에서 볼 수 없는 것이 많다. 중정당 뒷편에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계단식 후원이 있고, 가운데 계단을 올라가면 사당으로 연결되는 내삼문이다. 사당 마당에는 신비롭게 생긴 석등이 있다.
비각안에 보존돼 있는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 두 마리의 모습도 특이한데, 통일신라 시대에 주로 사용하던 쌍귀부(龜趺)다.
도동서원의 가장 유명한 볼거리는 서원의 앞뜰 400년 된 아름드리 은행나무다. (82년 10월 지정 당시 400년이었으니 지금은 430년이 넘었다.) 이 나무는 둘레가 무려 8m에 이른다. 이 서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는 모란이 만개하는 6월, 배롱나무꽃이 만발하는 8월,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11월이다.
인근에 있는 한훤당 고택도 가볼 만 하다. 한훤당의 후손이 지켜온 이 집터는 남동향이다. 소나무가 쭉쭉 뻗어 올라간 야트막한 언덕 아래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그림같이 자리 잡은 모습은 누가 봐도 천하 명당이다.
전성기에는 이 집 주변으로 70여채의 기와집이 있었다고 한다. 6.25 전쟁 낙동강 전투가 치열했던 무렵 이 집은 인민군이 지휘본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 한원당 고택은 입구 풍경이 아름다워 인스타그램 명소로 거듭났다. 고택 내부는 마당 중간 건물을 허물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대구 지역의 무더운 날씨를 견디기 위해 건물 천고를 높여 개방감을 극대화 했다. 고택 한 켠은 큰며느리의 의견에 따라 한옥 카페로 운영한다.
오래된 집이지만 오가는 사람이 많아 공간 전체에 생기가 감돈다.
고택에서 차로 10여분 가면 모정마을이다. 여기에 낙동강을 내려다보는 이로정(二老亭)이 있다. 함양에 살던 일두 정여창 선생과 한훤당 선생의 이야기가 남아 있는 곳이다. 조선 5현(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에 속했던 두 사람은 무오사화, 갑자 사화를 함께 겪었다.
'제일강산(第一江山)' '이로정(二老亭)' 두 개의 현판이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알 길이 없다. 보통때는 문을 닫아놓고 특별한 요청이 있어야 내부를 개방한다.
이로정 가까운 곳 언덕에는 커피명가 구지점이 있다. 대구를 대표하는 커피 브랜드에서 자랑하는 '명가치노' 등 시그니처 메뉴를 즐길 수 있다.
▲구암서원
구암서원은 밤이 아름다운 곳이다. 구암서원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서원 곳곳에 화려한 미디어파사드가 펼쳐진다. 미디어파사드는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설치해 미디어 기능을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서원 곳곳을 비추는 사자성어, 디지털방명록, 사진 촬영 체험 공간 등 다양한 인터랙티브 아트는 밤공기와 야경과 어우러져 새로운 볼거리를 선사한다. 구암서원 입구와 백인사&연비루의 미디어파사드는 상시로 볼 수 있다.
달성서씨의 선조를 모신 이 서원은 1665년 창건한 건물로 처음에는 연구산에 있었다. 1675년(숙종 1) 귀계 서침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고 해마다 제사를 지내다가 1718년(숙종44) 동산동으로 이전하면서 사가 서거정 선생을 합향하고 그 후 약봉 서성 선생과 함께 서해 선생을 합향했다. 이후 산격동 연암공원으로 이전해 지금 모습이 됐다. 경내에는 강당, 숭현사, 비각, 제수청 등이 있다. 구암서원 숭현사는 대구 시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 안에 있을 뿐 아니라 보존 상태가 좋은 편이다.
계단을 올라서면 대구 북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구암서원은 대부분 새로 지은 건물이라 고풍스러운 정취가 부족하다. 진입로가 복잡한 것도 단점이다.
▲녹동서원
달성군 가창면에 있는 녹동서원은 임진왜란 당시 귀화한 일본 장수 김충선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일본과 관계가 깊은 곳이라 입구부터 마네킨 네코(복을 부르는 일본 고양이 인형)가 여행객을 반긴다. 한일관계 경색 이전에는 해마다 많은 일본인들이 찾아오던 곳이다.
김충선은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 휘하 장수로 출전했다 조선에 귀화해 조총 제작 기술을 전수하고 여러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인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