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대료를 둘러싼 인천국제공항공사와 국내 면세점 사업자 간 입장 차이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코로나19 등 여파로 적자가 지속된 점을 들어 임대료 인하를 주장하고, 공사는 각 사가 입찰 당시 직접 써낸 금액이라며 형평성 차원에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이에 신라·신세계가 면세점 철수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10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호텔신라 면세 부문의 2분기 매출 8502억원으로 전년 대비 2.1% 증가했지만, 113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는 신세계디에프도 2분기 매출액은 6051억원으로 22.9% 늘었지만, 영업손실 15억원으로 적자 전환됐다.
코로나19로 급감한 매출이 회복되지 않은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들의 소비 패턴이 변화한 점이 치명적인 영향을 미쳤다. 면세점 명품 쇼핑의 큰 손인 단체 관광객은 줄고,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개별 여행객이 늘면서 올리브영이나 다이소 같은 로드숍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결국 신라·신세계는 지난 4∼5월 각각 인천공항공사를 상대로 1·2 여객터미널 면세점 중 화장품·향수·주류·담배 매장 임대료를 40% 내려달라는 내용의 조정신청을 냈다. 지난 6월 30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진행된 1차 조정에서 양 측은 의견 조율에 실패했고, 오는 14일 2차 조정이 예정돼 있다.
두 회사의 법률대리인은 “법원이 조정절차를 통해 당사자 간 적정한 임대료 수준에 대한 합의 가능성을 살펴보고 있다”며 “법원은 삼일회계법인에 면세점 재입찰 시 형성될 임대료 수준에 대한 감정촉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조정이 결렬되면 신라·신세계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에서 철수하고 재입찰이 이뤄질 것이고 인천공항공사는 새 임대료 수준이 대폭 낮아져 더 큰 손해가 발생할 것”이라며 “우리는 적정한 임대료 조정이 공사에도 이익이 된다는 입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천공항공사 측은 감정촉탁 결과와 상관없이 1차 조정에 이어 오는 14일 2차 조정기일에도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료는 국제입찰을 통해 확정된 것이어서 조정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 신라·신세계는 2023년 7월부터 10년간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 운영권을 따내 8년의 운영 기간을 남겨두고 있다. 인천공항 면세점 임대료는 이전까지 고정 금액이었지만, 2023년 입찰부터 공항 여객 수 연동 방식으로 전환됐다. 인천공항 전체 출국객 수에 ‘객당 임대료’를 곱해서 산정·지급하는 방식이다. 신라와 신세계가 부담하는 객당 임대료는 각각 8987원, 9020원이다. 6월 인천공항 출국객(296만7449명)을 기준으로 두 회사가 납부하는 임대료는 매월 300억원 수준이다.
이에 양사는 입찰 당시 예측과 달리 여객 수와 면세점 매출 간 상관관계가 무너졌고, 여객 수가 회복되면 임대료 부담만 커지고 매출은 늘지 않아 이익이 오히려 악화한다며 임대료 조정이 절실하다는 입장이다.
해외 사례를 보면, 싱가포르 창이공항과 중국 상하이 국제공항은 면세 업황이 극심하게 악화한 점을 고려해 면세사업자의 임대료를 감면하는 조치를 시행했다. 창이공항은 입찰로 선정된 면세점 사업자의 임대료를 30% 이상 감면했다. 상하이 공항도 기존 면세점 사업자의 임대료 최소 보장액을 4분의 1 수준으로 내려 임대료 부담을 낮춰준 상태다. 현재 태국과 홍콩에서도 면세점 사업자가 임대료 인하를 요구해 해결책은 검토 중이다.
다만 이들 거점 공항을 벤치마킹해 객당 임대료를 도입한 바 있는 인천공항공사만 임대료 인하 움직임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는 임대료 감면 결정이 감사원 감사나 배임 등 형사적 책임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업계는 공사 측 반응에 유감을 나타내고 있다. 면세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공항처럼 임대료를 일시 조정해달라는 것인데, 계약 당사자가 법원의 조정에 참석조차 하지 않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이화연 기자 h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