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 1분기 건설업 사고사망자 비율이 전체 평균보다 4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사망사고를 막기 위한 대책들을 시행하고 있지만, 건설 현장이 ‘죽음의 일터’라는 오명을 벗기에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16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이 발표한 ‘2025년 1분기 건설업 사고사망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1분기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근로자 1만명당 사망자 비율)은 0.43퍼밀리아드(만분율, 이하 단위 모두 퍼밀리아드)다. 이는 광업(1.1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건설업에 이어 운수·창고·통신업(0.25), 임업(0.20), 전기·가스·증기 및 수도사업(0.12) 등이 뒤를 이었다.
연도별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은 2021년 1분기 0.56을 기록한 뒤 2022년 1분기 0.53, 2023년 1분기 0.40 등으로 줄어드는 추세였으나 지난해 1분기 0.43으로 반등한 뒤 올해도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올해 2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 사고(사망자 6명)와 경기 안성시 서울-세종 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사망 4명) 등 대형 사고가 발생한 게 올 1분기 건설업 사고사망만인율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와 별개로 올해 1분기 건설업종의 질병사망자도 전년 대비 1.4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업은 특성상 다른 산업에 비해 질병 사망자 비중이 적은 산업이다. 그런데 올해 1분기에는 질병사망자 수가 55명을 기록하면서 전년(39명)보다 늘어난 것은 물론 역대 최대 규모로 집계됐다. 이에 따라 올해 업종별 질병사망만인율에서도 건설업(0.24퍼밀리아드)이 광업(107.11퍼밀리아드)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보였다.
건설산업연구원은 “고용노동부가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의 업무상 질병 인정 범위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인정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질병사망자를 연도별로 비교해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른 업종 대비 건설업의 질병사망자 비중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넘었지만, 건설 현장의 사망사고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24년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589명의 작업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그중 건설업 종사자는 276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46.8%에 달한다. 고용부는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가 전년 대비 27명(8.9%) 감소했으나 이는 건설 경기 침체로 인한 ‘착시’, 말 그대로 ‘일이 없어서’ 줄어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또 고용부에 따르면 올해 3월까지 사업주 안전조치의무 불이행으로 사망한 근로자 수가 137명으로 집계됐는데 이 중 71명이 건설업에서 나왔다.
정부는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 수가 많이 나오는 점에 주목하고 감소세로 전환하기 위해 상반기에 건설 현장 감독·점검을 집중적으로 점검했다. 또 건설사들의 경각심 제고를 위해 건설 현장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 명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감리·건설인력·불법하도급 문제 등을 포함한 건설안전 대책도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건설사들도 사고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추락사고 및 혹서기 온열질환 예방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일부 건설사는 대표이사가 직접 현장을 방문해 안전관리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위험공종 안전실명제’를 도입한 건설사도 있다.
하지만 정부와 건설사의 노력만으로는 건설 현장의 구조적 문제로 안전사고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에선 건설 현장 사망사고 이면에 현장 인력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건설근로자공제회가 발표한 ‘2024년 건설 근로자 종합생활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설 근로자의 평균 연령은 51.8세였다. 또 건설업 진입연령은 2020년 36.6세에서 2022년 37세, 지난해 39.4세로 점차 올라가는 추세다.
건설 현장의 고령화는 시공 품질 저하와 현장 안정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젋은 층의 건설업 기피가 심각한 수준이다. 우수한 청년층의 유입을 위해 건설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고, 일자리 질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인 기자 lji201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