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 여파로 최고의 안전자산으로 여겨졌던 달러와 미국 국채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21일 미국 ICE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유로·엔·파운드 등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미국 달러화의 평균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DXY)가 99.38까지 추락했다. 미국 달러화 가치는 올해 들어 8% 넘게 급락하면서 40년 만의 최악의 기록을 보였다. 달러 가치가 하락한 원인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에 따른 미국의 경기 침체 우려 때문이다. 미국 금융 시장이 불안해지고 달러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해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회수하면서 달러 가치가 추락하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투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미국 국채 금리는 상승했다. 상호관세 부과 전까지 3.9%를 밑돌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11일 기준 4.5%까지 올랐다. 지난 7일 관세전쟁 우려와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연 3.886%까지 떨어졌다가 9일 4.516%로 뛰기도 했다.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심화되면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커져 미 국채 가격이 오르는 게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와 정반대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미 국채 금리 상승이 달러화 약세와 맞물리면서 투자금 이탈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주요국의 미 국채 보유 규모는 올해 들어 사상 최대치로 늘어났다. 미 재무부에 따르면 지난 2월 미국 이외의 국가에서 미 국채를 보유한 규모가 총 8조8200억달러(약 1경2534조원)로 집계됐다. 대규모 매도세가 출현된 가운데 중국 투자자들이 미국 국채의 비중을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월 235억 달러 늘어난 7843억 달러를 나타냈다. 장기채는 48억달러어치를 순매도했지만 단기채를 151억 달러어치 순매수했다.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급격한 관세 인상에 보복하기 위해 시장 투매를 조장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 의장 해임 가능성도 미 국채 시장의 잠재적 폭탄이 될 수 있다. 실제 감행될 경우 미국 제도에 대한 불신을 심화함으로써 외국인들의 미 국채 매도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투자자들은 새로운 안전자산인 유로화와 독일·일본 국채를 주목하고 있다. 유로화 가치는 1년 9개월 만에 최고치로 뛰었다. 지난 11일 유로화는 전날보다 2% 넘게 올라 한때 1유로당 1.1226달러를 찍었다. 이는 2023년 7월 9일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주요국 통화 가운데서도 안전자산으로 꼽히는 스위스 프랑은 장 중 한때 전날보다 4% 가까이 올라 1.2119달러를 기록했다. 달러 대비 스위스 프랑의 상승 폭은 2015년 1월 이후 가장 컸다.
독일과 일본 국채에도 글로벌 투자금이 몰리고 있다. 독일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4일 독일의 대규모 부양책 발표 이후 2.88%까지 올랐다가 한 달 사이 0.42bp(1bp=0.01%포인트) 떨어졌다. 일본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달 1.56%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말 대비 48bp 올라 상승세가 가파르다.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는 “일반적으로 관세 인상이 있으면 달러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지만, 최근 달러화가 약세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은 (미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선호도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미국의 무역 적자가 감소할 경우 채권 수익률은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