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쏘아올린 '비대면 진료'…의약계-플랫폼 갈등

소아청소년과의사회 "아이들 목숨 건 도박"
약사회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졸속 추진에 우려"
원산협 "피해와 불편은 국민 몫…육아가구 고통 외면"

백재욱 도봉구의사회 총무이사가 지난 30일 서울 도봉구의 한 병원에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관련 비대면진료 실행 과정을 시연하고 있다. 뉴시스

6월 1일부터 동네 의원을 중심으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되는 가운데 의료계·약사계와 플랫폼 산업계 등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다.

 

비대면 진료는 화상을 통해 의사가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고 진료와 약 처방을 하는 방식이다. 스마트폰이 없는 경우 음성 전화를 통한 진료도 가능하다.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확산 이후 2020년부터 한시적으로 허용됐지만 1일부터 위기단계가 하향 조정되면서 시범사업으로 전환된다.

 

의료계는 “복지부가 아이들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 것은 아이들의 목숨을 걸고 의사들한테 도박을 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반면 산업계는 “의료 선진국 대부분이 비대면 진료의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전히 쟁점이 많아 실제 시범사업 시행이나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5월 30일 결정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은 재진 환자 원칙을 그대로 고수한 방안이다. 코로나19 기간에 초진·재진 구분이 없던 비대면 진료는 재진 환자 중심으로 바뀐다. 초진 환자의 비대면 진료는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의료기관이 없는 섬·벽지 거주자, 장기 요양 등급 판정을 받은 만 65세 이상 노인, 장애인복지법상 등록 장애인, 격리 중인 감염병 확진 환자 등이 대상이다.

 

만 18세 미만 소아 환자는 해당 병원에서 진료 이력이 없는 초진이라도 휴일·야간 시간대 비대면 ‘상담’이 가능해진다. 다만 약 처방은 받을 수 없다. 약 배송의 경우 직접 의약품 수령이 곤란한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 허용된다.

 

비대면 진료 수가는 지금처럼 의료기관과 약국 모두 ‘시범사업 관리료’ 30%를 가산하는 수준으로 확정됐다. 차전경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과장은 “소아의 경우 증상이 급변하고,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초진의 경우 의학적 상담만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의료계는 “의사들한테 도박을 하라는 것과 다름없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는 지난 30일 입장문을 내고 “복지부가 아이들 대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한 것은 아이들 목숨을 걸고 의사들한테 도박을 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라며 “현장 전문가 입장에서 분명히 이 제도를 운영하다가 사고가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사회는 “아이들이 가진 병의 특징과 진단의 어려움으로 인해 비대면 진료는 아이들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약사회도 입장문을 내고 “시범사업은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오남용 수단이 될 뿐이란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약사회는 “현재와 같은 졸속적 비대면 방식 진료를 허용한다면 오진, 과잉 진료와 의약품 오남용으로 인한 폐해는 거동 불편자 등 의료취약계층에게 집중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대면 진료보다 30% 높게 수가를 정해 건강보험 재정 낭비라고 비판했다. 환자 부담이 커지고 건강보험 재정이 악화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비대면진료가 대면진료보다 30% 더 효과 있다는 근거가 있는지 알 수 없다”며 “건보 재정이 부족해 보장 항목을 줄이겠다면서 무원칙하게 비대면진료 수가를 30%나 높이는 것은 불필요한 낭비”라고 비판했다.

 

반면 플랫폼 업체들은 정부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재진 환자로 제한한 데 대해 반발했다. 비대면진료 플랫폼 업체들로 구성된 원격의료산업협의회(원산협)는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야간·휴일 소아환자의 비대면 처방 금지는 육아 가구의 고통을 외면한 것”이라며 “결국 모든 피해와 불편은 국민 몫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업계의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일본 등 의료 선진국 대부분이 비대면 진료의 초진을 허용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민지 기자 minj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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