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비즈=김민지·권영준 기자] 가을에는 여러 가지 수식어가 붙는다. 풍요롭다 같은 가을 자체를 표현하는 말부터 수확의 계절, 독서의 계절까지 다양하다. 먹을 게 풍부해지니 지식으로 머리와 감성을 채우라는 뜻일까.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임은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에 도전한다. 독서의 계절, 가을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다면 ‘경의선 책거리'를 찾아가 보면 어떨까.
◇ 버려진 철길과 책 만나 변신…“행복한 가을 여행지”
경의중앙선 홍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경의선 책거리’를 만날 수 있다. 경의선 책거리는 지난 2016년 10월 조성됐다. 이 길은 예전에 경의선 철로가 놓였던 곳이다. 이 구간을 달리던 경의선이 지하로 들어가면서 지상에 남은 공간을 이용해 마포구가 책 테마 거리를 만들었다.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와우교까지 250m 가량 이어진다.
이 거리의 특징은 열차 모양을 한 서점들과 전시 공간이다. 버려진 철길이 책을 만나 개성있고, 아기자기한 문화 공간으로 변신했다. ‘경의선 숲길’의 일부이기도 한 ‘경의선 책거리’는 깊어가는 가을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경의선 책거리를 걷다 보면 일상의 피로와 마음이 절로 편안해진다.
전철역에서 나와 먼저 만나는 곳은 경의선 책거리 운영사무실 건물이다. 책거리 안내 지도가 비치돼 있으며 월별 행사와 이벤트 일정도 확인할 수 있다. 폐철도 부지에는 문학을 비롯해 여행, 인문, 예술 등 분야별 책방이 있다. 산책로 양옆으로 책방 6동을 포함한 부스 9동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지하에 있던 구조물을 개조해 만들었다.
책거리가 끝나는 와우교에서 내려다보면 기차간이 연결된 듯하다. 간이 책방이라 할 만한 이곳에서 추천 신간과 화제작, 베스트셀러를 고루 만날 수 있다. 부스들은 각각의 테마에 어울리는 책들을 판매하고 있다. 책방마다 책을 전시·판매하는 외에 소소한 이벤트도 진행한다.
거리 곳곳에 놓인 유니크한 조형물들도 매력적이다. ‘와우교 100선’, ‘책거리역’이 특히 인기다. 와우교 100선은 마포구 주민이 뽑은 ‘어른이 될 때까지 꼭 읽어야 할 100선 도서 목록’을 토대로 만들었다. 내가 읽은 책이 몇 권인지 세어도 재미있다. 조형물 끝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책을 꺼내는 소녀상도 눈에 띈다.
‘책거리역’은 포토존으로 유명하다. 책거리역은 예전 경의선 세교리역과 서강역 사이를 역처럼 꾸민 곳이다. 길 바닥에 경의선 철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플랫폼 위에는 이정표도 있고, 기차를 기다리는 벤치도 있다. 아이들이 기찻길을 따라서 해맑게 뛰어노는 모습이 정감 간다.
책거리 주변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경의선 숲길’이 대표적이다. 경의선 숲길의 인기 스타는 가좌역에서 홍대입구역 사이 ‘연남동 구간’이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와 분위기가 비슷하다고 연트럴파크라는 애칭도 얻었다. 소문난 맛집과 카페, 공방, 마켓, 책방 등 트렌디한 명소가 즐비해 언제나 붐빈다.
홍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서강대역까지 370m 남짓한 ‘와우교 구간’은 철도 건널목을 복원한 땡땡거리로 유명하다. 기차가 지나갈 때 건널목에 차단기가 내려오면서 ‘땡땡’ 소리가 울린다고 붙은 이름이다. 길을 건너려는 가족과 역무원 동상 앞은 줄 서서 사진 찍는 명소가 됐다.
◇ 연희동 책바, 책과 함께 따뜻한 낭만·특별한 힐링 타임
‘낭만’이라는 단어가 가득 찬 곳이 있다. 허기진 마음을 채워줄 책, 마음을 적셔줄 술 한잔, 그리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까지 차가운 현실 속에서 따뜻한 낭만을 찾아 떠도는 이들을 맞이하는 곳, 바로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책바(ChaegBar)다.
책바는 지난 2015년 술을 마시며 책을 읽는 이색 공간으로 입소문을 타며 알려지기 시작했고, 지난 2020년 말 유재석, 조세호가 진행하는 tvN 예능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정인성 책바 대표가 출연하면서 연희동 명소로 떠올랐다.
정인성 대표는 기업 마케팅 관련 일을 하다가 퇴사한 뒤 ‘낭만’을 모토로 책바를 열었다. 책을 좋아했고, 취미로 시작한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활용해 ‘내 일을 나답게 하는 법’을 직접 실천했다. 이는 책으로 이어졌다. 지난 2019년 책바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밤에는 일하고, 낮에 쉽시다’라는 책을 내며 작가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정인성 대표는 “물건과 책 그리고 공간을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낭만적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그 낭만과 현실이 맞닿아 있는 지점이 바로 ‘책바’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이 책에는 책바를 이렇게 정리했다. ‘일과 삶에 대해, 고민과 시행착오에 대해, 낭만을 놓지 않는 현실에 대해, 우리 시대의 일과 삶에 관해, 낭만을 놓지 않는 현실에 대해, 고민과 시행착오에 대해’라고. 이 곳은 홀로 찾는 손님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대부분 예약으로 이뤄진다. 절반이 워크인 좌석이지만, 예약을 하고 찾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힐링의 공간으로도 활용된다는 뜻이다.
칵테일도 책 이름으로 정했으며 해당 책 내용에 나오는 술로 구성했다. 예를 들어 ‘달과 6펜스’라는 칵테일은 작가 서머싯 몸이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의 생애를 모델로 지은 소설 ‘달과 6펜스’ 작품에 나오는 술을 활용했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은 종종 압생트를 마시는데, 빈센트 반 고흐가 이 술을 마시고 귀를 잘랐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냉혹한 현실과 어떻게 이뤄지는 지도 모르는 디지털 문화 속에 살고 있다. 정인선 대표의 이야기처럼 현실을 포기하고 살 순 없지만, 그렇다고 낭만을 놓쳐서는 안 된다. 현실과 낭만이 맞닿아 있는 지점, 바로 책바에서 오늘 하루 나를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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