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HDC현대산업개발…신뢰 회복 못하면 퇴출

정몽규 회장 사퇴, HDC 회장은 유지… ‘책임회피’ 논란
브랜드 신뢰도 추락 불가피… 정비사업 수주전 ‘먹구름’

정몽규 HDC그룹 회장(가운데)과 하원기 대표이사(왼쪽), 유병규 대표이사가 광주 아파트 외벽 붕괴 사고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제공

[세계비즈=박정환 기자]‘아이파크’ 브랜드로 아파트 ‘명가(名家)’ 지위를 누려왔던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잇단 사망사고로 인한 신뢰도 추락으로 향후 사업 수주에 심각한 차질이 생긴 데다, ‘아이파크’ 보이콧 요구가 거세지면서 기존에 진행 중인 정비사업마저 좌초 위기에 처했다. ‘천지개벽’ 수준의 개혁안을 통해 신뢰도를 회복하지 못하면 10대 건설사 지위는 물론 존립 자체가 위협받게 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정몽규 HDC그룹 회장이 ‘사퇴’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업계에선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지주사인 HDC그룹 회장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HDC현산 회장직만 내려놓은 것을 두고 ‘면피성 퍼포먼스’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몽규 회장은 17일 오전 10시 HDC현대산업개발 용산 사옥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광주 철거 건물 붕괴사고와 광주 서구 화정아이파크 외벽 붕괴사고 등 두 사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이 시간 이후 현대산업개발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9명이 숨진 광주 학동4구역 철거건물 붕괴사고 이후 7개월 만에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가 발생하면서 책임론이 확산되자 입장 표면에 나선 것이다. 이날 정 회장은 환골탈태(換骨奪胎) 자세로 완전히 새로운 회사로 거듭나는 한편 사고 원인 규명과 사태 수습, 피해자 보상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사고 사망자 및 실종자 가족, 입주예정자, 주주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피해 보상에 만만치 않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며 “이에 더해 사고 발생 아파트 입주 예정자의 요구대로 시공 중인 아파트를 철거 후 재시공할 경우 추가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에 사고가 난 화정 아이파크는 예정된 11월 말 입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일부 입주민들은 공사가 진행 중인 전체 단지를 철거하고 재시공해줄 것으로 요구하고 있다. 아예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계약을 취소하겠다는 입주민들도 적잖다.

 

이에 정몽규 회장은 “안전점검에서 문제가 있다면 수분양자 계약 해지는 물론 아파트 완전 철거와 재시공까지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이럴 경우 현대산업개발은 입주 지연 보상금, 철거 및 신축 비용 등을 포함해 막대한 출혈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선 입주가 늦어질 경우 지연 기간에 따라 재건축·재개발 조합 외에 개별 입주예정자에 지급해야 할 지연보상금만 적게는 200억원, 많게는 1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현 상황에선 사고 원인 규명과 실종자 구조가 최우선인 만큼 아직 보상책을 언급하기엔 이르다”며 “실종자 수색이 끝난 뒤 구체적인 보상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이번 사고로 브랜드 신뢰도가 곤두박질쳐 추후 재도약을 담보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미 정비사업 시장에선 ‘아이파크 퇴출’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HDC현산이 GS건설과 공동시공하는 대전 서구 탄방1구역 재건축에서도 시공사 교체를 요구하는 조합원들이 늘고 있다.

 

또 광주 운암3단지 재건축정비조합은 HDC현산과의 계약 해지 절차에 돌입했으며, 서울 강남구 개포1단지 주공아파트 재건축인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에선 단지명에서 ‘아이파크’를 빼야 한다고 주장도 나왔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정비사업 수주전은 결국 브랜드 싸움”이라며 “두 번이나 대형사고가 발생한 HDC현산으로서는 올해 신규 사업 수주가 힘들지 않겠나”고 내다봤다.

 

정몽규 회장의 ‘책임 회피’ 논란도 불거졌다. 사고 발생 후 업계에선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해 정 회장이 HDC현산은 물론 지주사인 HDC그룹 회장과 대한축구협회 회장직도 내려놓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정 회장은 HDC현산 회장만 사퇴하고 나머지 직함은 그대로 유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정 회장은 “그룹 대주주로서 사고 수습에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관련 업계에선 진정성이 부족한 것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pjh121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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