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대출보다 더 무서운 ‘폭탄’ 전세대출

지난해 31% 폭증…전셋값 오름세에 올해도 증가세 이어질 듯
은행권, 생활자금 목적 전세대출 DSR 강화 등 규제 움직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세계비즈=안재성 기자] 신용대출 급증으로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잔뜩 긴장하고 있는 가운데 전세자금 대출이 신용대출보다 더 ‘무서운 폭탄’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전세대출은 지난해 31%나 폭증한 데다 전셋값 오름세가 멈추지 않아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거 관련 대출이라 신용대출처럼 강력한 규제가 쉽지 않다.

 

이에 따라 은행권은 일단 보증금 마련 목적이 아닌, 생활자금 마련 목적의 전세대출부터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말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105조988억원으로 전월말(103조3392억원) 대비 1조7596억원 늘었다. 같은달 신용대출이 감소한 것과 달리 증가폭이 11월(1조6564억원)보다 오히려 더 확대됐다.

 

지난해 연간으로는 전세대출이 30.63%나 폭증했다. 5대 은행의 전체 가계대출 증가율(9.73%)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지금 금융당국이 신용대출을 조이고 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전세대출”이라는 우려가 강하다.

 

아직은 이사철이 아니라 전세대출 증가세가 신용대출처럼 연초부터 표면화되진 않았다. 5대 은행의 전세대출 잔액은 올해 1월 들어 13일까지 8거래일 간 4215억원 증가했다.

 

그러나 본격적인 이사철을 맞이하는 3월부터는 전세대출이 빠르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임대차3법이 야기한 ‘전세 대란’이 여전하다는 점이 문제시된다.

 

지난해 7월 임대차3법이 시행된 후 시장에 전세 매물이 씨가 마르면서 전셋값은 무서운 속도로 치솟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전셋값은 7.55% 올라 집값 상승률(7.04%)을 뛰어넘었다.

 

올해도 전셋값 상승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은 올해 전셋값이 3.1% 뛸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어림없는 수치”라면서 “최소 7% 이상 오를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셋값이 상승할수록 임차인들은 은행에 더 많은 전세대출을 신청할 수밖에 없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지난해 전세대출 잔액 증가폭이 24조6456억원에 달했다”며 “올해는 그 수준을 넘어 30조원에 육박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특히 보증금 마련 목적의 전세대출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적용되지 않는 등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보다 훨씬 규제가 약하기에 더 속수무책이다.

 

그렇다고 함부로 규제를 가할 수도 없는 게 금융당국과 은행권의 딜레마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전셋값이 치솟는 상황에서 고액 대출 금지, DSR 규제 적용 등 전세대출 규제가 강화되면, 임차인들의 주거난이 극심해질 수 있다”고 염려했다. 이어 “이는 정부가 선택하기 힘든 방안”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은행권에서는 자체적으로 생활자금 마련 목적의 전세대출부터 규제를 가하는 모습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1일부터 생활자금 마련 목적 전세대출의 DSR 규제를 기존 100%에서 70%로 강화했다.

 

보증금 마련 목적의 전세대출은 주거 안정을 위해 DSR 규제가 면제되지만, 생활자금 마련 목적의 대출에는 DSR 규제가 적용된다. 그 한도를 축소한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식 투자로 흘러가는 자금을 막으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강하다”며 “고액의 생활자금 목적 전세대출은 주식 매수에 활용될 수 있어 한도를 줄인 듯 하다”고 진단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올해 은행권 가계대출 증가율을 지난해(9.73%)보다 훨씬 낮은 5% 안팎으로 관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맞추려면, 전세대출도 규제를 강화하지 않을 수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보증금 마련 목적의 전세대출까지 조이는 것은 주거 안정에 반하기에 생활자금 마련 목적의 대출에 규제가 집중될 듯 하다”고 내다봤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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