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에만 제재·배상 강요…대형 금융사고, 당국 책임은 없나?

규제 완화·감독 미흡 등 사고 유발…금감원 직원 비리 연루도
“중징계·100% 배상 강요등 금융사에만 책임 미뤄”…책임회피

사진=연합뉴스

[세계비즈=안재성 기자]최근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 대형 금융사고가 빈발하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뒷북 치기’식 규제책 발표와 함께 금융사에게만 중징계를 가하고, 사상 최초의 100% 배상까지 강요하면서 정작 섣부른 규제 완화, 감독 미흡, 직원의 비리 연루 등 금융당국의 책임은 회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비리로 얼룩진 금융당국

 

20일 금융권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19일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과징금 도입 ▲무자본 인수합병(M&A) 모니터링 시스템 구축 ▲전환사채 공시의무 강화 ▲유사투자자문업 감독 강화 등 ‘불법·불건전행위 근절 종합대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이달부터 내년 3월까지 테마주·공매도 집중대응 기간으로 정하고 인지된 혐의는 신속히 조사에 착수키로 했다. 불공정 거래 포상금은 최대 20억원까지 확대한다.

 

그러나 이는 대형 사고가 터진 뒤 ‘뒷북 대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강하다. 그 전에 섣부른 규제 완화와 감독 미흡이 대형 사고를 유발시켰다는 지적이다.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과도한 규제 완화와 감독 미흡이 참사를 불렀다”면서 현 사모펀드 사태는 결국 예견된 참사라고 지적했다.

 

2013년부터 개인·비상장법인 투자요건 완화, 헤지펀드 자산운용규제 완화, 판매규제 완화 등 사모펀드 관련 규제가 완화된 부분이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후 사모펀드 자금의 대부분이 생산적인 분야가 아닌, 고위험·고수익 대체투자로 쏠렸으며, 이를 금융당국이 미연에 방지하지 못하면서 대규모 환매중단 사태로 연결됐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에 따르면 공매도 금지 기간인 지난 8월 한 달간 잔액 부족으로 인한 거부 건수가 1만4024건에 달했다. 사실상 불법 무차입 공매도가 공매도 금지기간 동안 대거 발생했는데도 금융당국은 이를 막지 못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들어 ‘동학 개미’ 열풍 속 유사투자자문업의 유혹과 피해 사례 등이 이어졌는데 금융당국은 뒤늦게야 움직였다”고 꼬집었다.

 

또 금융당국은 지난 19일 ‘불건전행위 집중대응단’을 출범시켰지만, 이미 자본시장조사단과 자본시장 특별사법경찰 등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보여주기식 기구’라는 비판이 적잖다.

 

특히 문제시되는 부분은 쏟아져 나오는 금융당국 직원의 비리 연루 의혹이다. 피해액만 1조6000억원에 달하는 라임 사태에서는 김 전 금감원 팀장이 연루됐다.

 

김 전 팀장은 청와대 행정관 재직 시절 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로 떠오른 김봉현 스타모빌리티 회장에게 금감원 내부 정보를 제공하고 법인카드·골프비·술값 등 3667만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지난달 18일 서울남부지방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과 벌금 5000만원 및 추징금 3667만원을 선고받았다.

 

피해액 5000억원대의 옵티머스 사태에서도 금감원의 비리 연루자가 여럿이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3일 금감원 윤 전 국장의 서울 성동구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알선수재 혐의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윤 전 국장은 재작년 3~4월 김재현 옵티머스 대표에게 펀드 수탁사인 하나은행 관계자 등 금융계 인사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수천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금감원 전 수석조사역인 변씨도 로비 의혹를 받고 있다. 변씨는 옵티머스 펀드 자금이 흘러 들어간 해덕파워웨이 상근감사로 근무했는데, 지난 5월 옵티머스 부실을 검사하는 금감원 국장과 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따뜻한 마음으로 봐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안 단속 못하는 금융당국, 유감 표명도 없어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자신의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다. 줄줄이 쏟아지는 비리 연루 의혹에 대해서도 “전직 직원의 일”, “검사에 직접적 영향을 미칠 사람들이 아니었다” 등 책임 면피에만 급급하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형식적인 사과나 유감 표명조차 없었다.

 

오히려 금감원은 중징계를 운운하면서 ‘준엄한 감독자’ 역할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날 라임 사태 관련 첫 제재심이 열리는 가운데 금감원은 신한금융투자, KB증권, 대신증권 등 라임 펀드 판매사의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직무정지를 염두에 둔 중징계를 사전통보했다. 옵티머스 사태와 관련해 금감원 제재는 내년쯤 나올 전망인데, 역시 중징계가 유력하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은 신한금융투자, 우리은행, 하나은행, 미래에셋대우 등 라임 펀드 판매사들에게 사상 최초의 100% 배상을 강요했다. 이 과정에서 윤석헌 금감원장이 직접 “100% 배상 여부를 해당 금융사의 종합검사에 반영하겠다”고 압박했다. 최근에는 아직 손실액이 확정되지 않은 펀드에 대한 선배상까지 추진되고 있다.

 

때문에 금융사의 불법행위만 부각시켜 당국의 책임 회피를 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금융사 CEO 중징계의 핵심사유가 ‘내부통제기준 마련 미흡’인데 금감원 내부 통제는 어떤 상황이냐”고 말했다.

 

한편 가계대출과 개인사업자대출에 대한 금융당국의 이율배반적인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고신용자의 신용대출에 대해 건전성을 운운하면서 은행에 자체적인 규율을 요구했다”며 “그러면서 정말로 위험한 개인사업자대출의 이자 납부 유예 혜택을 6개월 연장한 조치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사업자대출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한다면, 이는 은행이 아니라 금융당국 책임”이라고 덧붙였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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