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배상 장기화 우려…높은 부담에 배임 위험까지

은행들 분조위 결정에도 배상 거부하거나 연기
대법원 판결 배상률보다 높아…배임 위험까지

사진=연합뉴스

[세계비즈=안재성 기자]통화옵션상품 키코(KIKO)의 불완전판매 배상 문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키코 관련 손실액을 배상하라는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배상을 꺼리거나 거부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섣불리 분조위 권고대로 배상할 경우 관련 소송이 줄을 이으면서 은행의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다.  또 현 은행 경영진이 후일 주주들로부터 배임으로 고발당할 가능성도 있다.  불필요한 배상은 은행 이익에 손해를 끼친 것으로 판단돼 배임 사안이 되기 때문이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신한·하나·대구은행은 지난 6일 키코 배상 여부 수락 기한을 다음달 초순까지로 연장했다. 벌써 다섯 번째 연장으로 결정을 6개월째 미루고 있는 셈이다.

 

KDB산업은행과 한국씨티은행은 아예 배상 권고를 수용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관계와 법률 의견을 검토한 결과 배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앞서 금감원 분조위는 지난해 12월 신한·우리·산업·하나·대구·씨티은행이 일성하이스코,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업체에 대해 키코 관련 손실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특히 원글로벌미디어에 대한 배상률은 41%에 달한다. 남화통상의 배상률은 20%, 재영솔루텍과 일성하이스코는 각각 15%로 책정됐다.

 

배상금액 총 256억원이며, 신한은행이 150억원으로 가장 크다. 이밖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대구은행 11억원, 씨티은행 6억원 등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배상을 시행한 곳은 우리은행뿐이다. 다른 은행들은 모두 배상을 거부하거나 결정을 계속 미루고 있다.

 

키코는 미리 정한 범위 안에서 환율이 움직이면 기업이 환차익을 얻지만 반대의 경우 손해를 떠안도록 설계된 상품이다. 2000년대 중반 수백 곳의 중소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예상하고 14개 은행과 계약을 맺었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이 급등하자 막대한 손실을 입고 줄도산했다. 금감원은 중소기업 738곳이 총 3조2274억원의 손실을 입은 것으로 추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 대법원 판결을 받은 기업이 4곳, 이번에 금감원 분조위 권고가 나온 기업이 또 4곳”이라며 “분조위 권고대로 따를 경우 타 기업들의 소송도 쏟아지면서 은행의 배상액이 자칫 수천억원에서 수조원까지 부풀어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원글로벌미디어에 적용된 배상률이 과거 대법원 판결보다 오히려 더 높다는 점도 문제시된다. 지난 2013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키코 계약이 불공정행위 등으로 무효라거나 사기나 착오로 인한 계약이어서 취소할 수 있다는 기업 측 주장은 모두 인정하지 아니한다”고 판시했다. 판결에 따라 모나미와 수산중공업은 한 푼의 배상도 받지 못했다.

 

다만 삼코와 세신정밀에 대해서는 “기업의 경영상황 환경 등에 비추어 환헤지 목적에 적합하지 아니함에도 계약 체결을 권유한 행위나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아니한 설명의무 위반 행위에 대하여 은행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이 결정한 배상률은 삼코 35%, 세신정밀 30%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로 인해 끝난 것으로 여겨지던 키코 사태는 정권이 바뀌면서 다시 부각됐다.  지난 2017년 8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키코 사태를 ‘금융 분야 3대 적폐’ 중 하나로 규정했다.

 

특히 윤석헌 금감원장은 2018년 5월 취임 직후 키코 사태에 대해 재조사를 지시했다.

 

금융권 고위관계자는 “원글로벌미디어에 책정된 41%라는 배상률은 지나치게 높다”며 “이대로 배상하면 은행의 부담이 눈덩어리처럼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 게 법의 기본 정신”이라며 “몇 년간 싸워서 대법원 판결을 받아낸 기업보다 가만히 있던 기업에 더 높은 배상률을 책정한 금감원의 권고는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 은행 경영진은 배임에 대한 걱정 때문에라도 분조위 권고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seilen7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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